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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2/가갸마을

가갸마을

by hansujeong 2016. 12. 12.


밤공기가 따스한 가갸마을
지은이_양다영,조유빈,채영환
책소개
경복궁역 2,3번 출구를 나서면 가게들이 즐비한 도로를 마주하게 됩니다. 하지만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한국인들 뿐 아니라 중국인들 또한 많은 이 곳만 보고서는 감히 그 뒷골목도 이와 같으리라 짐작하면 안 됩니다. 그 바로 뒷골목부터 상상치도 못하게 아기자기하고 어여쁜 곳이 펼쳐지기 때문입니다. 큰 대로와 연결된 골목 중 마음에 드는 곳 하나를 정하여 들어가봅니다. 이제, 미로 아닌 미로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다만 길을 잃어도 너무나 괜찮고, 남들보다 좀 더 헤맬수록 좀 더 예쁜 것들을 눈에 여럿 담을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는 미로를 말이지요. 대로로부터 들어가는 골목들, 골목길로부터 또 들어가는 골목들, '그' 골목길로부터 또 들어가는 골목들, '그-' 골목길로부터 또 들어가는 골목들 ... 정말로 미로처럼 이루어진 뒷마을이지만 가끔은 반갑게도 다른 길로 이어지기도 합니다. 심심찮게 말이죠. 이 길이 내가 왔던 곳인지 주의깊게 보지 않으면 헷갈릴 수 있을 만큼 비슷한 모습을 한 길들, 하지만 조금 더 발걸음을 천천히 하고 고개를 들어 시선을 핸드폰이 아닌 주위로 돌려보면 보이는 각 길들만의 특징들. 그 길만이 지닌 것들. 때로는 한 데 모인 여러 집의 두꺼비집들일 수 있고,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던 어여쁜 화분일 수 있고, 골목에 놓인 의자나 빨랫줄이 그 것들일 수 있습니다. 다른 곳에서는 그냥 그렇던 것들이 이 곳에서는 길을 대표하게 되는 곳이 경복궁역 대로변, 그 뒷마을입니다. 높은 빌딩만 마주하던 서울에서, 전봇대로부터 뻗어나온 전깃줄들보다 높은 건물을 찾아보기 힘든 이 곳. 정신없이 시끄러운 도로 뒤에 숨겨진 사람 살아가는 정겹고 여유 넘치는 이 곳. 마음 가는 골목 하나만 골라 첫 발걸음을 딛게 되면 우리 각자의 미로는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만이 간직할 미로지도를 만들기 시작하게 되는 것이지요. 그 첫걸음을 딛도록 이 책이 손을 내밀어줄 수 있길 바랍니다.

저자소개
원창연 (21,남,대학생) : 원창연은 부암동 자하문 근처에 살며 동국대학교 교육학과 2학년에 재학 중이다. 그는 대2병에 걸렸다. 공부든 연애든 모두 지겹다. 그러던 중 등교길에 지나치는 가갸마을에 눈길이 간다. 그는 흥미로웠다. 조금 더 알고 싶어졌고, 조금 더 있고 싶어졌다. 마치 연애를 할 때의 감정이 일어나는 것 같다.
Lukash (27,남,종합예술가) : 나는 스위스에서 온 종합예술가이다. 서울현대미술관과의 협업으로 한국에 두달쯤 머무르게 되었다. 미술관 측에서 경복궁 옆에 게스트하우스를 마련해주었다. 서촌은 낮은 집이 많고 조용해서 지내기 좋다. 서울에는 고층빌딩과 차만 가득한 줄 알았는데 막상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조유나(19,여,고등학생) : 나는 필운동에 있는 'ㅂ'여고에 다니는 고3이다. 어렸을 때부터 이 동네에서 자라, 솔직히 모르는 게 없다고 생각한다. 누구든 이 동네에 대해 궁금한 게 있으면 나한테 물어봐도 된다. 여기는 변함없음이 특징인 곳이라 그게 좀 지루하면서도, 뭐 나름의 매력인 것 같기도 하다.

목차
1. 이야기의 시작
2. 소개
  1) 마을 소개
 - '가갸 마을' 이름 유래
 - 마을 관광 코스 소개
  2) 인물 소개
 - 저자 소개
 - 등장하는 과거 인물 전체 관계도
3. 가갸에서.
  1) 원창연의 이야기
 - 빈곤한 관심을 갈구하는 작은 것들
 - 길을 알려주는 듯 거짓말하는 표지판
 - 어디서든 하늘을 쳐다볼 수 있다
 - 시간마저 산책하는 그 곳
 - 천천히 음미하며 걷다
  2) Lukash의 이야기
 - 예술가들을 품었던 따뜻한 보금자리
 - 마을의 정이 고유한 문화로
 - 서로를 위로했던 나무와 시인
 - 구멍날 정도로 닳았던 소매
  3) 조유나의 이야기
 - 나를 나타내는 것은 이름 뿐이 아니다
 - 모든 세상을 캔버스로
 - 머무름 안의 머무름
 - 그리움의 색을 찍어 그린 그림들
  4) 그리고, 함께.
 - "공전 앞에서 보자."
 - 정을 굽는 화덕
4. 이야기의 끝

책속으로
경복궁을 바라보고 왼쪽 담을 끼고 쭉 걸어 들어가면 그림 같은 입면을 가진 보안여관이 있다. 1930년대부터 여관으로 사용됐는데 지금은 전시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내가 서촌에 관심을 가졌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한국의 다른 곳에는 남아있지 않은 옛 건물들이 늘어서있다. 한국의 옛 건물 하면 한옥만 생각해봤는데 또 새로웠다. 너무 허름해서 건들면 부서질 것 같은 곳이 많아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바로 왼쪽에 예전에는 아마도 돈을 받는 창구였을, 작은 창이 있다. 너무 낮아 한참을 숙여 들여다보니 한 여성분이 앉아있었다. 벽을 두드려 똑똑 소리를 냈더니 밖으로 나와 주었다. 키는 작지만 똑부러지게 생겼고, 얇고 긴 알을 가진 안경을 쓴 긴 머리의 젊은 사람이었다. 내가 누구고 어떤 이유로 가갸마을 일대를 취재하고 있는지 설명하며 보안여관을 구경시켜줄 수 있냐고 했더니 고맙게도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그녀는 보안여관이 한 회사에 인수된 이후에 파견되어 일하고 있는 직원이었다. 그녀가 말하기를 작은 전시장이지만 박물관장이 된 기분으로 사명감을 갖고 일하고 있다고 했다. 그녀를 따라 그 작은 창이 있는 공간으로 들어가 앉자 종이컵에 믹스커피를 한잔 내어왔다. 그 동안 잠시 둘러보니 작은 공간이 온통 그녀가 한 스케치로 가득했다. 가장 좋은 자리에 걸려있는 그림은 그녀의 시선을 그대로 그린 그림이었다. 밖으로 향한 창에 보이는 모습을 계절별로 그려놓았다. ‘아, 분위기를 그림에 담아내는 데에 전문가구나,’하고 생각했다. 이제 마주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녀가 말하기를 보안여관은 옛날부터 예술가들이 많이 묵었다고 했다. 내가 원래 알고 있던 이중섭이나 가갸마을에 오고 나서 알게 된 윤동주도 이곳에 머물렀었다고 했다. 그리고는 어떤 책 그림을 보여줬는데 시인부락이라는 문예동인지라고 했다. 12명의 생명파 시인들이 이곳에서 창간했다는 기록이 있다고 했다. 이곳이 일종의 아지트로 쓰였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대략적인 설명이 끝나고는 이제 내부를 둘러보았는데, 한걸음한걸음 옮길 때마다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시회를 하는 곳이라기보다는 폐가에 가까운 내부가 이어졌다. 나무가 부서진 그대로 있었고, 벽지가 찢어진 모양 그대로 보존되어있었다. 놀라는 나를 보곤 그녀가 웃으며 이곳의 발자취는 보존하면서 그 분위기에 소박하게 작품을 전시하는 것이 이곳의 매력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뜬금없이 걸려있는 작품들이 이질감이 드는 것 보다는 잘 어우러져 더 빛을 발하고 있는 것 같았다. 2층에 올라가서도 상황은 비슷했다. 복도를 걸어가는데 바닥 한 구석에서 칙칙한 타일들 사이로 알록달록한 타일조각이 하나 놓여있었다. 이것도 작품인지 물어봤는데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이곳에선 작품과 작품이 아닌 것을 구별하는 경계가 모호해요. 이 장소, 여기 있는 종이 한 장, 흙더미까지 모든 것이 작품이 되고 예술가들의 영감의 원천이 되곤 했으니까요.” 인상적인 말이었다. 알록달록한 타일은 문화적 개화기를 겪던 시기에 이름 모를 예술인이 흐릿한 눈빛을 가진 눈을 그려 가져다 놓았는데, 이곳에 머무는 예술가들에게 순수성을 잃지 않도록 경각심을 주려고 했다고 전해진다고 했다. 그 얘기를 들으니 눈이 흐릿한 눈빛으로 날 쳐다보는 것 같아 한참을 들여다보다가 내려놓았다. 그리고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창문으로 보이는 경회루였다. 실제로 여관으로 쓰일 때, 많은 예술인들이 그 경관을 소재로 삼았다는 게 그녀의 설명이었다. 정말 그럴만한 장면이었다.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에 그들이 보았던 모습은 어때 보였을지 또 생각해볼 만 했다. 마지막으로 내 전시에 대해 말해주며 시간이 되면 구경 오라는 말과 함께 감사를 표하고 보안여관을 나왔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의 느낌이 또 달랐다. 어찌 보면 허름하고 별거 아니어 보일 수 있는 이곳에 대한 자긍심으로 일하고 있는 그녀의 친절에, 이곳에 머물렀던 한국 예술인들의 정신에 감탄하게 됐던 방문이었다.